책 속으로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준비하기 위해 임금이 치러야 하는 대가에 대해 숙고해 본 후에야, 우리는 다시 한 번 감히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그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할 수 있다. _45쪽
십자가를 향해 가시는 예수님의 모든 이야기는 정치적인 이야기로서, 정치권력을 비판하고 재정의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바로 그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신학과 속죄의 신학을 발견하고, 또한 그 속에서 오늘날 우리를 위한 십자가의 의미를 발견한다. 예수님의 일생 동안, 가이사는 세금을 바치고 자신이 주는 평화를 얻으라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십자가형에 처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돈을 바닥에 내던지시면서 가이사가 요구한 것을 피를 흘리시며 바치시고, 동일한 행동을 통하여 아버지께는 아버지가 요구하셨던 것, 즉 종의 순종을 바치신다. 그 종의 순종을 통해 세상의 힘은 하나님의 힘에 직면하게 된다. _58-59쪽
단연 성경에서 가장 빈번하게 나오는 명령은 천사들이 여자들에게 말하고 예수님이 반복하신 “무서워하지 말라.”이다. 그렇다, 뭔가 새로운 일이 일어났다. 그렇다, 세계는 결코 다시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당신의 삶은 이제 철저하게 바뀌려고 한다. 그렇다, 하나님은 당신과 함께하시고 당신에게 새로운 것들을 요구하실 것이다. 그러나 무서워하지 말라. 모든 것들이 잘될 것이다. 부활절이 그것을 입증해 준다. _126쪽
복음서 이야기 속의 사람들은 보통 달리기를 하지 않는다. 둘이 서로 경주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여기서는 모든 사람이 달리기를 하고 있다. 마리아가 제자들에게 빈 무덤에 대해 말하려고 급히 내달리고, 베드로와 예수님이 사랑하시던 제자가 달려가고, 요한이 먼저 도착하고, 베드로가 요한을 따라잡아 무덤 속으로 먼저 들어가고, 요한이 베드로를 따라 들어가서 보고 믿는다. 이것은 숨 가쁜 목격자의 증언으로서, 매우 충격적이고 매우 예기치 않고 매우 격변하는 어떤 일이 일어났음을 말해 주는 표지들이다. _142쪽
부활절은 결국 세상으로부터 도피하는 비상구, 혹은 현실과 유리된 하늘로 올라가는 개인 사다리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점에서, 애석하게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찬송들도 포함해서 매우 많은 부활절 찬송들이 잘못되어 있다. 혹은 오직 반만 맞고 반은 그르다. 부활절은 “하늘 가는 밝은 문이 열려 있다.”는 사실에 대한 것은 아니다. 비록 그 문이 열려 있다 할지라도 말이다. 부활절은 하늘의 강력한 새 삶이 땅 위에 시작되었고, 우리는 그 수혜자임은 물론 그 대행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것이다. 우리의 말마따나 마치 예수님이 단순히 ‘죽어서 하늘로 가신’ 양, 부활절은 그분이 ‘천상의’ 왕임을 찬미하는 것이 아니다. 부활절은 그분이 하늘은 물론 땅의 주이심을 찬미하는 것이다. 그분이 ‘널리 알리라고 우리에게 명하시는’ 메시지는 단순히 ‘어떻게 우리 역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새로운 창조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_147-148쪽